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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20대 직장인 추천작 (더 메뉴, 욕망, 현실)

by bye-ol 2025. 11. 23.

더 메뉴

 

《더 메뉴》(The Menu, 2022)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과 셰프 사이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미식극이자,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에 대한 통렬한 풍자극입니다. 고용 불안, 생존 경쟁, 정체성 혼란 속에서 버티고 있는 20대 직장인들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선 불편할 만큼 현실적인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민낯을 미식이라는 포장으로 조리해 낸 이 작품, 지금 다시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욕망: 먹는 자와 보여주는 자의 뒤바뀐 게임

영화는 한 고급 미식 레스토랑에 초대된 VIP 손님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값비싼 코스를 즐기러 온 ‘선택받은 자’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앉은 자리는 일방적으로 셰프의 시선 안에 있는 무대입니다. 셰프 슬로윅은 완벽하게 통제된 요리 과정을 통해 손님들을 조용히 압박하며, 요리가 아닌 그들의 욕망과 허영을 한 접시씩 내놓습니다. 이 구조는 곧 사회의 계급 구조와 맞물립니다.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 아닌, 지위 과시의 수단으로 소비되고, 셰프는 예술을 요리하지만 결국 소비되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주인공 마고는 손님과 직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며, 욕망의 구조 밖에서 진짜 자아를 찾으려는 존재입니다. 20대 직장인에게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평가받고, ‘고급스러움’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압박 속에서 나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현실. 《더 메뉴》는 그런 사회에서 욕망이 어떻게 왜곡되고,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지를 정교하게 조리해 보여줍니다.

현실: 완벽한 시스템 속, 탈출구 없는 일상

셰프 슬로윅이 만든 요리 세계는 철저히 계산되고 통제된 공간입니다. 손님들은 그 안에서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에 휩싸이고, 직원들은 미소를 유지하면서도 절대복종 속에 살아갑니다. 이 풍경은 곧 현대 조직 문화의 축소판입니다. 명령 체계, 완벽주의, 위계적 구조. 요리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메시지는, 탈출구 없는 현실 속 개인의 소외입니다. 셰프는 어느 순간 “당신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며 손님들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 말은 단지 극 중 캐릭터를 향한 대사가 아닌,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정해진 루틴 속에서 감정 없이 소비하고, 열정 없이 일하며,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20대 직장인들에게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기괴하게 그려낸 픽션이지만, 그 안의 구조와 감정은 철저히 현실적입니다. 직장에서 웃으며 버티는 ‘역할 수행’의 피로함, 성취 없는 열정, 소모되는 인간관계. 《더 메뉴》는 이 모든 것을 섬세하면서도 충격적으로 요리해 냅니다.

자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가?

영화에서 유일하게 셰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은 마고입니다. 그녀는 유일하게 ‘소비자’의 위치를 벗어나, 셰프의 시스템에 도전합니다. 셰프에게 “그냥 햄버거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반전의 순간이자, 자아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햄버거는 이 영화를 통해 표현된 진짜 욕망, 진짜 인간성, 그리고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마고는 셰프가 잊고 있던 요리의 본질, ‘누군가를 위해 만든다는 기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일이 아닌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듭니다. 20대 직장인에게 마고의 행동은 하나의 돌파구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는 시스템 안에 있지만, 거기서도 자신만의 선택과 자존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더 메뉴》는 ‘탈출’이 아닌 ‘회복’이라는 키워드로 현실을 마주하는 법을 제시합니다.

《더 메뉴》는 미식 영화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현대 노동자, 특히 20대 직장인의 삶을 날카롭게 해부한 사회 비판극입니다. 우아한 접시 위에 올려진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당신이 매일 맞서고 있는 구조, 감정, 관계, 욕망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신도 한 번쯤 자신에게 묻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나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