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 개척시대는 영화 속에서 종종 인간 생존의 본질, 자본주의의 시작, 인간 간의 연대를 표현하는 배경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OTT 시대에 다양한 형식과 시점으로 재해석된 작품들이 등장하며, 전통적인 서부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서부 개척시대를 직접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다룬 세 편의 작품—《퍼스트 카우》, 《호스트일병 라이언》, 《고요한 바다》—을 비교하여 서사 구조와 시대성, 인간 드라마의 표현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퍼스트 카우 – 자본주의 시작의 조용한 선언
《퍼스트 카우》(First Cow, 2019)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 초기, 오리건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독립 영화입니다. 대규모 전투도, 긴박한 추격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조용한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자의 우정과 생존 이야기로, 개척시대를 ‘작은 경제적 거래’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합니다. 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우연히 만나 연대를 맺고, 지역 유일한 젖소에서 몰래 우유를 짜와 쿠키를 구워 시장에 파는 소소한 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작고 평화로운 자본의 시작은 결국 권력자에 의해 위협받고, 생존이 걸린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전통 서부극의 무법성과 총격전 대신, ‘조용한 자본주의의 시작’을 그려냅니다. 롱테이크, 자연광 촬영, 정적인 음악은 오히려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며, 개척시대라는 배경 속 인간의 본능적인 연대와 자립 의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호스트일병 라이언 – 전쟁을 통해 본 개척 정신의 단면
《호스트일병 라이언》(Hostile, 2017)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프랑스/미국 합작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영화로, 19세기 서부 개척시대와는 시점적으로 다르지만 ‘개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상징성 이 매우 강한 작품입니다. 폐허가 된 지구,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 확보, 낯선 공간에서의 생존 투쟁. 이러한 설정은 오히려 19세기 미국 개척시대의 정신, 즉 “미지의 땅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인간”의 원형을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괴물과 맞서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 속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독과 상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교차 편집으로 구성합니다.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성과 고립된 삶을 현대적 시점으로 투영하면서, 인류가 끊임없이 “희망”과 “연결”을 좇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전통적 서부극의 무대는 아니지만, 인간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는 서부 개척 시대와 맥을 같이 합니다.
고요한 바다 – 우주 시대의 서부극적 전환
《고요한 바다》(The Silent Sea, 2021)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SF 드라마로, 인류가 달 탐사에 나선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작품은 ‘서부 개척시대’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우주”라는 새로운 프런티어(frontier)를 중심으로 한 인간의 욕망과 희생을 중심에 둡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달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한정된 물자와 정보를 바탕으로 생존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는 19세기 개척시대의 황무지와 동일한 조건으로, 미지의 영역에서 인간이 삶의 방향성과 윤리를 어떻게 설정하는지를 묻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권력, 기업, 과학이라는 요소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확장된 개척 정신을 드러냅니다. 단순히 자원을 쟁취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은폐하고 통제하려는 구조는 개척시대와 다르지 않은 불평등한 질서의 반복을 보여줍니다. 《고요한 바다》는 서부극의 외형은 없지만, 구조적 측면에서는 매우 유사한 서사를 내포하고 있어, 우주 시대의 서부극이라 불릴 만한 현대적 접근을 보여줍니다.
《퍼스트 카우》는 1800년대 서부 오리건의 실제 개척시대를, 《호스트일병 라이언》은 폐허가 된 지구라는 상징 공간을, 《고요한 바다》는 달이라는 미래 프런티어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 세 작품 모두 인간이 “미지의 환경에서 살아남고, 관계를 맺으며, 질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서부 개척시대의 본질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처음’의 세계와 마주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는가를 이야기하는 데 있으며, 그 정서는 시대를 넘어 지금도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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